DD


2012/09/23 01:32

생각하고 있던 것 그 1 잡담

수치기술과 능력서술적 장르에 대해.
천동설 지동설론

지금 PC방인데 할 것도 없고... 예전에 생각했던 걸 글로 쓸까 합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평범함-특별함<->우둔함이라는 구도와 이 구도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는 수치기술<->능력서술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하게 된 생각은,

<이 구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은 어디에 있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 게 <등질공간>이라는 개념인데.

이것은 그 옛날 데카르트가 고안해 냈다는 수학적 개념이 그 기원으로, 근대의 성립과 동시에 나타난 무기질적이고 균등한 공간... 예를 들자면 <시장>, <화폐>와 같은 것에 의해서 <등질공간>에 편입되어 비교 가능하게 된 상품이라든가 하는 것이 떠오릅니다.

수치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 평범함-특별함이라는 구도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등질공간입니다.
예를 들자면, 등산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근대부터입니다만, <높은 곳>에 올랐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세계를 포괄하는 <등질적인 어떤 높이>가 은연중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죠.
반면 능력서술에서는 이 <등질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위>의 비교가 불가능하고, <수치기술>은 성립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본 것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론인데, 한번 판타지나 라노베에서의 <전투>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등질공간> 내에서의 <전투>는 <수치>의 우위에 의해 대개 결정됩니다. 종종 수치 이외의 것이 끼어들기도 합니다만(기연, 우연, 플레이스타일, 전술 등) 대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하자면, <등질공간>에서의 <전투>는 비교적 '예측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게(=수월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가라타니식으로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이는 어떤 <도약>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므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등질공간>이라는 전제가 존재하지 않는 라이트노벨의 능력자배틀물, 능력서술이 중심이 되는 작품들에서는 정 반대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등질공간 내에서의 <차이>로 우위를 정하는 수치기술적 전투와 달리, 능력서술적 전투에서는 <차이>란 등질공간 내의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부터 전제되어 있는 것이며, 이 <차이>는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할 뿐입니다. 여기서는 <헛점>, <트릭> 등의 '어떻게 사용하는지의 문제'가 우위를 결정합니다만, 이것은 '숙련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보면 '임기응변'에 달린 것으로서, 훈련한다고 어떻게 더 좋아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능력서술적 전투에서의 우위는 완전히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즉, 여기서도 엄밀히 커뮤니케이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최소한의 <등질공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과 그 어떤 공통점도 없는 외계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한다면 쉽숩니다.)

따라서, 여기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른바 <메타 능력>들의 존재입니다.

능력자서술물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불능 문제를 극복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등질 공간>을 강제적으로 만드는 능력, 이를테면 카미죠 토우마의 <환멸>과도 같은 모든 차이를 무화시키는 메타 능력은 커뮤니케이션적 관점에서 본다면 필연적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이런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최근 하는 생각이 이에 관련된 생각입니다만.)

또한 판타지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의 성립을 위해 (혹은 커뮤니케이션을 덜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서) <균질공간>을 해체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요청되는데, 이를테면 <등질공간>의 비유로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해체적인 것으로서의 <히든 피스>와 같은 것이 그 예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생각하는 것이 <히든 피스>를 가진 주인공이 수치기술적 세계를 해체시키며 다른 등장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작품으로 무엇을 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거야 많긴 한데 다들 2% 부족하다는 느낌이라...)

여기까지입니다.

핑백

  • 이것저것☆잡담공간 : RE: 조아라 노블레스 레이드물의 초반전개 살펴보기 2015-02-14 19:26:24 #

    ... 화한다든가, 한명 한명이 특질적이었던 인간이 등신대의 인간=배경으로 화한다든가, 있지도 않았던 '내면'이 테크닉에 의해 날조된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 (http://kurame.egloos.com/5139015 요건 예전에 썼던 뻘-글인데 대충 관련되는 내용이라 링크 걸어봄) 에스컬레이트식 성장이 전제하는 능력들의 '수치기술'도 이 3인칭과 마찬가지 특징을 ... more

덧글

  • kurame 2012/09/23 01:50 # 답글

    추가1. 여기서의 <등질공간>은 정치적으로 보자면 민주적인 토의와 토론, 합의 등의 정치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통해 정치적으로 비유해보자면 <수치기술>쪽의 경우는 이 공간이 너무나도 폭넓게 성립해버리는 경우, 이를테면 특정 클립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여당 혹은 야당 지지자들만이 모여서 서로 얘기하는 광경이라고 할까, 그런식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능력서술>의 경우는 공유할만한 정치적 <공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이를테면 일베수꼴과 오유좌빨의 치고받음(...) 정도의 예라면 적당할까? 서로가 서로한테 헛방만 날린다거나, 혹은 문제의식 자체조차도 공유가 안 된다거나 하는 정도의....
  • kurame 2012/09/23 01:54 # 답글

    뻘1. 등질공간은 트위터의 <타임라인>으로, <메타능력>과 <히든피스> 같은 것은 트위터의 <RT>기능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늅실러 2012/09/23 09:45 # 답글

    <금서목록>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만 금서목록은 일종의 하이브리드로, 금서목록의 경우에는 등질공간이나 해체의 성립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초능력의 경우에는 레벨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기때문입니다. 오히려 초능력의 경우에는 토우마를 등질공간에서 강제로 0으로 만드는(파산선고?), 일종의 무지막지한 룰이나 제도로 보는 게 수지에 맞지 않을까요? 또한 초반에 흘린 떡밥이지만, '초능력'을 쓸 수 없기에 '마법'으로 전직했다는 이야기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면 뺄 수 없는 이야기군요.

    다만 초능력과 마법사이를 나누는 '레벨'이 없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며, 두 세계를 모두 하나의 '초자연'으로 인식, 완전히 해체해버리는 토우마의 환상살은 이 글과 같은 관점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겠군요.
  • kurame 2012/09/23 13:19 #

    금서목록은 여러모로 특기할만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언급하신 수치기술적인 레벨의 도입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서술적 장르로서의 특징또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 토우마 자신도 이러한 하이브리드를 강제실현하는 메타능력자라는 점...
  • 늅실러 2012/09/23 13:34 #

    으음, 여러모리 정리되지 않는 답글이 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금서목록 시리즈보다 월야환담 시리즈가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은데요. VT개념(수치)과 초능력개념이 동시에 있었고, 이 VT개념을 통한 헌터와 뱀파이어간의 악순환, VT개념으로 잴 수 없는 초월존재 라이칸슬로프와 후일 그런 라이칸슬로프와 뱀파이어, 인간의 경계를 무효화하는 한세건의 존재감 등등을 생각해 볼 때...? 또, 시리즈 물로서 맥락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월야환담 시리즈가 훨씬 더 나은 게 아닌지?

    아, 그리고 메시지적인 부분을 넘어서, 단순히 액션 스타일에 집중하면 능력서술물은 좀 지저분하게 전개되지 않나 싶습니다. 쏘면 뚫리고, 가르면 베이는 단순성에서 나오는 즉각적인 이미지가 부족하달까요? (배틀물도 이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배리어개념이나 손오공의 순간전투력상승 등은 배틀물의 탈을 쓴 능력서술의 삽입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룰이 너무 많고, 정작 싸우는 배틀의 쾌감은 줄어들지 않나 싶습니다.

    이걸 다르게 생각해보면 능력서술물은 능력의 서술 뒤로 폭력을 숨겨버린 건 아닌지?
  • kurame 2012/09/25 20:00 #

    음... 월야환담 시리즈에 대해서는 완전 생각외였던 터라 뭐라 떠오르는 말이 없네요. 제 경우 전투와 커뮤니케이션을 연관지어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예가 금서목록시리즈였던 이유는, 사실상 금서목록 시리즈가 전투 자체를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로서 사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투씬을 보면 얘내가 전투중인건지 그냥 말싸움을 하는건지도 분간이 잘 안갈 정도죠.) 이런 의미에서 "지저분하게 전개"된다는 말씀에는 동감합니다. 제 경우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지만...
  • kurame 2012/09/25 20:07 #

    다만 금서목록 외의 능력서술물 전반에 대해서 액션 스타일을 말하게 되면, 지저분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그냥 이건 취향 문제라고밖에(...) 예를들어 전 <죠죠>의 스타일이 그 어떤 배틀물에 비해서도 꿇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월야환담 시리즈를 다시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네요. 그렇다면 좀 더 논점이 명확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월야환담에 대한 답글은 그 다음에... 일단 월야환담에서의 VT개념과 초능력개념이 정확히 어떤 식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미씽이니 딱히 할 말이 없음(...)
  • 늅실러 2012/09/25 20:57 #

    음, 그 지저분하다와 커뮤니케이션 논리를 받아서 좀 더 과격하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일단 액션이 단순히 쾌감만을 주는 부분이 아니라 작품 구조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죠죠나 능력자물은 뭐랄까...

    말그대로 추리 배틀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이 능력서술배틀이란 게 실제 과학과 백프로 맞물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초능력이던 간에 과학적으로 나아가면 에너지의 벡터개념과 마주치고, 이 에너지 벡터개념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냥 신이니까요; (애초에 그 초능력이 모두 에너지 보존법칙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신이나 다름없죠.)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공리영역"에서 "연역"해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멈추어야 하지요.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제약이 물리게 되고, 작품에서 내놓는 해결법이란 게 이런 저런 제약을 통해서 도달하는 굉장히 복잡스러운 물건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싸우는 배틀물은 머릿속의 전투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정작 배틀물이 다루던 '육신'과 '폭력'은 그 뒤로 슬쩍 감추어진 느낌이 든단 말이죠. 제 경우엔 이거, 굉장히 부정적이거든요. 물론 제가 피가 튀기는 고어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는, 단순한 쾌감을 좋아하는 천박성이 어느정도 관련있기는 합니다만... 조금 포장을 해보면...

    배틀 그 자체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지만, 토우마가 복잡다단한 논리를 통해 도착한 결론이 말을 나누어 얻어낸 무언가가 아니라 '논파'이며, 토우마의 논리가 먹히는 건 '합의'라기보다는 마치 교묘하게 정의로 '감추어진 폭력'(=환상살?)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하고 말이죠.


    뭐랄까, 굉장히 있어보이는 듯한 말이 되어버렸는데; 윤리성을 따져도 '폭력'을 찬양하는 듯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수치기술 배틀물 역시 윤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기본적으로 둘은 미학적으로 다른 쾌감을 제공하고, 어느 게 더 윤리적이다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에서 금서목록을 위주로 봤을 때 과연 이 작품의 배틀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일종의 반대의견을 내놓아 보았습니다.
  • 늅실러 2012/09/25 21:06 #

    ps. 금서목록 작품 구성상 토우마한테 말빨로 눌리자,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도 실패라는 구조가 많긴 하죠. 하지만 그건 어떤 의미에서 결과론 - 그렌라간의 결과론적으로 옳았으니까 됐어!라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구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 최강이면서 최약 = 레벨 0라는 점과, 반전을 통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역전이 자주 소재가 된다는 점도 있구요. 여러모로 굴리기 재밌는 작품이군요.

    ps2. 후.. 근데 사실 저는 금서목록을 재미없게 읽어서 아마 앤젤 폴 이후부터인가 안봤을 겁니다..정확히 어디까지 봤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
  • kurame 2012/09/27 18:48 #

    음... 전 토우마에게는 <사상>이라 불릴만한 것이 없다고 보는 쪽이라서. 토우마에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있긴 하지만 지극히 소박한(ex 이 여자를 가만 냅둘수는 없다!) 정도의 것이고, 정의라는 형태를 취하여 적을 응징하는 것도 아닙니다. (금서목록에서의 악역 비중이 특이할정도로 높은 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주인공에게 깨지고도 계속 반복출현하는 악역들 등등) 토우마의 능력(환멸=환상살)에 비추어 보자면, <사상>또한 토우마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환상>이기에 토우마의 내부에서 그런 것은 <성립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가능해집니다. 심지어 토우마에게는 자기 자신이 연속된다는 의식이라 불릴만한 것도 희박합니다.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과 그에 대해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토우마의 모습이 이를 증명하죠. 한마디로 자기연속성이라는 <환상>까지도 <멸>하고 있다는... 여기까지 가면 과대해석인지 아닌지 애매해지지만.
  • kurame 2012/09/27 18:50 #

    따라서 금서목록에 있어서는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폭력>은 성립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토우마 자체가 <환멸>로서만 기능할 뿐 어떤 자신의 환상(사상)을 강요하는 류의 주인공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한마디로 금서목록에서의 토우마는 <무>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여타의 캐릭터에 비해 대단히 이질적입니다.
  • kurame 2012/09/27 18:48 #

    금서목록 이외의 장르 전반적인 것에서 <폭력>에 대한 문제는 좀 더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듯. 님 의견도 일리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님이 제기한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 의거해 번역하여 다시 말하는 데에는 좀 생각이 필요할 듯...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