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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01:12

「일베의 사상」합평회 때 썼었던 발제문 잡담

1.

 

일베의 사상3장의 발제를 맡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전 3장에 대해 할 이야기가 대단히 많았습니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좋을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겠다고 할까... 그런 느낌으로 어쩌면 좋지하고 며칠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발제문을 써본 적이 없었다는 것도 고민이었고요. 처음에는 아즈마를 A4 2페이지 정도로 소개하고 관두자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하지 못하게 될까 그게 좀 걱정이었습니다. 물론 합평할 시간이 따로 있다지만요.

그래서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적당히 제가 어떻게 3장을 읽었는지 인용 첨부해가면서 이야기하고, 그 도중이나 후에 궁금했던 점을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 체로 썼는데 제가 요즘 ~다 체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결국 쓰다가 바꿨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2.

 

처음으로 든 생각은 1, 2장과는 다른 3장만의 테이스트에 대해서입니다. 3장이 되면 확 어려워졌다고 다들 말씀들을 하십니다만, 그건 술자리에서 이미 박가분씨가 말하셨듯이 (부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이런 문제를 다루려면 그땐 이런 표현밖에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이건 제가 생각하기에 좀 얌전한 표현인 것 같고(웃음), 제가 생각하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노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일베의 사상을 대충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바로 대상을 문학으로서 보는 입장(1, 2)과 대상을 정치와 연관지어 말하는 입장(3)입니다. 방금 노렸다고 표현했는데 뭘 노렸냐 하면 1, 2장에 걸쳐서 분석한 문학적인’(=낭만파적 아이러니) 일베를 아즈마가 말한 이론을 사용해 구체화하여, 이론적으로 구체화한 대상에서 허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현실의 맥락(구체적으로 저는 이걸 네이션-스테이트의 문맥이라고 생각하는데)으로 끌어내려버리는 악의가 느껴지는... 아니 대단히 바람직한 정치평론이 되어 있는 것에 아 이 사람 참 노리고 썼구나!’ 하고 느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방향전환에는 개인적으로 조금의 현기증마저 느꼈습니다만. 여하튼 3장의 어려움1, 2장의 전개에서 극적인 방향전환을 노렸기 때문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박가분씨는 (자꾸 인용해서 왠지 송구스럽습니다만) “지금이라면 (‘안녕들 하십니까건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만, 바꿔 말하자면 일베의 사상을 쓸 때 까지만 해도 어렵게 말할 수밖에 없었고 아즈마필요했다는 것이 됩니다. 무엇을 위해서? 1, 2장에서 했었던 이야기에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 그의 이론을 통해 일단 일베를 클리어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렇게 해서 시작입니다만, 3부에서 처음에 이야기되는 것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넷에 대한 공론장인지 아닌지의 논쟁과 가부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으로서의 아즈마의 데이터베이스론이 나옵니다. 이는 비유로 이해하자면 질서(=의견교환이 됨)냐 혼돈(=의견교환이 안 됨)이냐라는 이항대립의 문제밖에 없었던 것이 질서도 혼돈도 아닌 제 3의 장소를 가졌다는 것이 됩니다. “인터넷은 의견 교환의 장이기 이전에 하나의 거대한 무의식적 데이터베이스”(182p)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최근 읽은 우노 츠네히로의 중동태中動態론에서는 이런 말이 있는데 간단히 인용해 보겠습니다.

 

최근 제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입니다만, 영화는 굳이 영화관으로 발을 옮겨서 돈을 지불해주는 매우 능동적인 관객을 전제하고 있는 미디어이고, TV는 이와는 반대로 어쩌다가 흘러나오는 방송을 대충 보는 수동적인 시청자를 전제로 하고 있는 미디어네요. 그리고 이 대비가 20세기적인 정보환경을 상징합니다. , 지금까지는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의식이 높은 인간, 즉 근대적인 <시민>을 손님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반대로 감정적이고 수동적인 <동물>을 손님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이 두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미디어의 문제만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사회제도의 기본에도 해당되는 인간상이라고 생각하네요.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시민>과 감정적이고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인간의 두가지 측면에 집중하고,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취합니다. 디시플린과 컨트롤, 숙의와 포퓰리즘이라는 이질적인 인간상을 기초로 한 두가지 원리를 짜맞추는 것이 20세기 인류가 다다른 결론이었다고 생각하네요. 이를테면, 양원(両院)제도가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애초 인간은 당연하지만 완전히 이성적, 능동적인 것도, 극단적으로 본능적, 수동적인 것도 아니에요. <시민><동물>도 아닌 것입니다. 어떤 때는 80%정도 능동적일지도 모르고, 어떤 때는 30%정도 능동적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인터넷은 언제나 옮겨가는 중간적인 상태에의 유연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라고 생각하네요. 영화보다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TV보다 수동적으로 소비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상태에 접속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현대의 정보기술은 20세기엔 불가능했던, <시민><동물>도 아닌,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상태에 직접적인 동시에 유연히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의 <시민>이란 공론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동물>이란 공론장이 아닌 장소에서(질서에 대조되는 무질서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노는 <시민=능동태><동물=수동태>도 아닌 <인간=중동태>을 인터넷을 통해 캐치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인터넷이라는 장소(=사이버스페이스)가 아즈마가 말하는 데이터베이스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즈마 또한 상징계에 의해서도 상상계에 의해서도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인간을 상징계와 상상계의 혼합으로서 포착해야 한다는 식으로 상상계와 동물적 회로에서 주장한 바 있는데 형태가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여하튼 종래의 하버마스의 공론장론에서 아즈마를 인용함으로서 박가분씨는 일베를, 공론장의 회로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일베 유저들의 사상성(낭만파적 아이러니)을 지적했던 1, 2장이 이론적인 장소를 가지게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가분씨는 그것을 말하는 데이터베이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제 생각에는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섬우주 커뮤니티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데이터베이스말을 한다’(공동체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닉한 의식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1, 2장과 3장의 초반을 잇기에 적절한 단어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하는이라는 단어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3장의 포인트가 됩니다.

일베의 사상에서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사실 말하는대상은 두 차원으로 분리된다고 생각합니다. 1, 2장에서 박가분씨가 설명했던 대로, 일베 유저들은 어떤 아이러닉한 회로를 거쳐서 공동체의 인정투쟁 안으로 편입합니다. 이때의 공동체일베라는 사이버 스페이스 내의 섬우주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일베 유저들은 이런 공동체에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넷 상이나 현실의 공론장에서도 말하기시작합니다. “현실 혹은 인터넷상의 공론장에서 인정투쟁을 벌인다” (194p) 즉 일베 유저들은 인터넷 상의 공동체에서 말하는 동시에 시민 사회의 공론장에서도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묘한 사태인데, 박가분씨는 방금 전까지 공론장을 둘러싼 회로1과 데이터베이스로 인해 새로이 생성된 회로2를 분리해 놓고, 갑자기 회로2의 이용자들이 회로1으로 간섭해 들어오는 현상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즈마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데이터베이스공론장사이의 자명한 구분이 흐려지고 만다.”(194p)

그리고 아즈마를 비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원인을 바로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에서 찾습니다. 촛불시위도, 그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난 것으로 논해진 일베도 그 근본에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있고, 그것이 두 회로를 겹쳐버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가분씨는 이어서 계급투쟁론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로 인해 발견된 새로운 회로를 계급투쟁의 굴절된 방식으로서 재정립합니다.(이 재정립에서도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근거로서 기능합니다.) 계급투쟁은 보로메오의 매듭 안에서 필연적인 것이고, 일베나 촛불시위 역시 그 근본에 국가에 대한 환상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이 매듭 안으로 회수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회로는 사실상 종래의 회로(네이션-스테이트)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3장에서 저는 일종의 변증법(라고 해도 헤겔 철학은 잘 모릅니다만)을 느끼는데, 종래 사회와 국가 사이의 회로=공론장을 뛰어넘는 형태로 데이터베이스로 인한 회로가 나오고, 이 두 가지를 지양하는 형태로 좀 더 강화된 네이션-스테이트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3.

   

 가라타니가 헤겔을 인용하며 말한 보로메오의 매듭을 대충(...) 그려봤습니다.

여기서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관계를 회로 1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그림은 아즈마 히로키의 포스트모던의 2층 구조’(문학환경론집)를 그린 것인데 회로 2를 설명하는데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위의 두 그림을 합쳐서 회로1과 회로2와 동시병존하는 상황은 뭐 이런 식이 아닐까... 합쳐봤습니다.

 

첫 번째 그림을 보면 개인은 <사회>를 거치는 형태로 <국가><자본>에도 참여하는데(회로1) <데이터베이스(DB)>가 등장하게 되면 사회를 우회하여 인터넷 상의 섬우주 커뮤니티에 몰입한다는 회로가 새롭게 구축됩니다(회로2). 이때 DB를 거쳐서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베나 디씨 유저가 많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민사회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그대로 (시민사회 커뮤니티의 확장으로서) 섬우주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뭐 오유라든가 SLR이라든가 해당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후자의 형태는 섬우주 커뮤니티가 어디까지나 시민사회의 확장이라는 형태이기 때문에 (회로 1의 보충) 종래의 회로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커뮤니티가 이런 형태로서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베는 회로2를 거친 유저가 많은 커뮤니티였기 때문에 새로웠고, 아마 한국 인터넷 역사상 처음으로 회로 1에 대해서까지 아이러닉하게 해체해버리는 형태로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가분씨는 이런 작용자체를 아즈마 히로키가 간과한 것으로서, <공론장> 안에 포함시켜서 계급투쟁과 연관짓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애초 아즈마의 경우 이런 작용자체를 상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제 생각이네요. 예를들어 바로 위 3번째 그림의 경우 보로메오의 매듭과 아즈마의 2층구조 모델을 동시에 그리면서 2층구조를 인터넷 상에서의 것으로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즈마의 경우 이 2층구조를 제시하면서 했던 설명이 방향성에 대해서입니다. 종래의 근대국가의 모델에서 이런 방향성으로 서서히 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자신이 제시한 구조는 그런 방향성을 표현한 것이라는 겁니다. 즉 아즈마의 경우 일베적인 회로(DB->아키텍쳐->섬우주 커뮤니티)가 보다 전범위, 전방위적으로 현실을 침입하는 사태(그리고 아이러닉하게 해체하는 사태)를 상정하면서 2층구조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아즈마 또한 회로1과 회로2의 간섭현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단 그는 회로1이 회로2를 변증법적으로 (계급투쟁 안으로) 삼킨다고 보지 않고 회로2가 회로1을 삼킨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우노 츠네히로에 대해서라면, 그는 아즈마가 논한 것 이후의, 새로운 형태의 사회와 국가간의 문제 -복수의 커뮤니티 vs 단일의 아키텍쳐-를 계급투쟁 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모델로 생각하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가 됩니다.)

박가분씨와 아즈마 사이의 이런 방향성의 차이는 대체 뭐가 원인이 된 것인가? 라고 하면 아마 역시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원인이지 않나 싶습니다. 일베 유저들이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 (그것이 어떤 아이러닉한 형태로 표출되더라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베 유저들의 행동을 계급투쟁적인 것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한국에 대해서라면 이 분석은 확실히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딴 나라(일본)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박가분씨의 이런 분석은 어떤 필연성이라기보단 한국적 맥락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사실 한국사회 분석서니까 얼마든지 그래도 되긴 합니다만), (1) 아키텍쳐가 보다 높을 경우 (2)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마저 거의 없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네요. (1)의 경우 이런 방면에 대한 인식 부족(?)이 일베의 사상 내에서 DC와 일베의 차이라든가 일베와 타 커뮤니티의 비교가 거의 없다는 문제, 그리고 예전에 제가 말했었던 미시마 유키오와 일베의 혼동 문제라든가로 연관된다고 생각하고요. (2)의 경우 222페이지에서 넷우익을 재특회와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만) 일베충과 2채널러 사이의 비교를 하지 못하고 어느쪽이든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방향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뭐 발제문에서 태클까지 막 걸기 시작하는건 어떨까 생각하는 만큼(...) 발제는 여기서 끝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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