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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4 19:26

RE: 조아라 노블레스 레이드물의 초반전개 살펴보기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2014149

위 글을 우연찮게 보고, 개인적인 생각을 써 보고 싶어 써 본다.

위 글은 '현대 레이드물'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공통점이 어떤 '재미'를 주는지 분석하고 있는데, 사실 난 전자와는 달리 후자의 '재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작가와 지망생, 독자들의 마니악한 모임일 판갤 유저들 성향과 달리) 나 자신은 이야기 창작 전반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읽는 거야 종종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독자로서 특별한 열의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별로 그것도 아닌거 같지만...

위 글의 분석 부분에서 내가 미진함을 느꼈던 까닭은, 아마 분석의 방향성 자체가 별로 내가 관심있어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저 글에서 제시한 공통점들의 관찰에 올라타 간단히 내가 원하는 방향 쪽으로 옮겨 글을 써보고 싶다. '현대 한국인의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1. 현실 배경

어째서 배경이 현실 배경으로 시프트했나.

원글에서는 판타지 등의 배경일 경우 독자와 작품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고', 현실 배경일 경우 독자와 작품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우며', 또한 전자의 경우 독자는 보다 능동적으로 배경에 감정을 이입해야 할 필요가 있고, 후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소위 대여점류 판타지나 무협의 경우 완전히 타이피컬하고 안정적인 세계관을 이미 공유하고 있다. 무협이라면 마교가 나오고 무슨 세가에 무슨 파가 나온다거나, 무림과 관은 불가침이라거나, 단전으로 기를 모은다거나 등등이 있겠고, 판타지라면 엘프, 드워프 등의 이종족이라거나 몇 서클 어쩌고 하는 마법의 구조라거나, 오크, 오거, 소드마스터 등등 이런 류의 책들을 몇 권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느낄만한 공통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 등의 배경이라고 해서 '독자와 작품과의 거리가' 딱히 '멀지만은' 않은 것이다.

물론 종래의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 장르 독자라면 이야기의 사정이 다르다. 현실 배경은 보다 익숙하고, 판타지 무협 등의 배경은 익숙하지 않다는 전제가 신규 독자층이라면 무리없이 성립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Q. 어째서 판타지, 무협등의 배경보다 현실 배경이 보다 큰 인기를 얻게 되었나.
A. 대량의 신규 유저들의 유입이 있었고, 이들이 보다 익숙함을 느낀 것은 전자보다 후자였기 때문이다.

라는 가설이 성립한다.

신규 유저들의 대량 유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량 유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통계수치가 없더라도 그럭저럭 증명할 수 있다. 현재의 유료 연재나 e-book 붐은 종래 장르소설을 보았지만 구입한 적이 없거나, 혹은 장르에 입문한지 얼마 안된 신규 유저들의 대량 유입이 있기에 우후죽순 생기고 잘 나가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현대물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이 이러한 유료 연재, e-book 붐 이전의 것인가 이후의 것인가? 본격적인 유행의 시기를 언제쯤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후의 것이라면 위의 가설은 대충 성립한다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즉 현대물의 흥행은 스마트 디바이스로 인한 연재 소설에의 접근성 향상이 신규 독자를 대거 양성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전이라면 위의 가설은 성립하기 힘들다. (사실 개인적인 감각으로는, 유료 연재가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현대물은 팍팍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기에, '이후'보다는 '이전'이 맞지 않을까 하고는 생각하지만.) 만약 '이후'가 맞다고 해도, 종래 판타지와 무협을 좋아하던 기존의 독자층들에서도 현대물에 대해 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거나 하는 사례들(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사례들을 몇 명 정도 알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이런 독자들이 기존 독자들 중 몇 퍼센트인지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을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의 가설이 틀렸을 경우 또는 위의 가설에 맞지 않는 예외의 경우, '기존 독자층 중 상당수가 판타지나 무협보다도 현대물을 보다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면'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전제 위에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즉 if 전제 위에서 전제의 이유를 서술하려는 것인데, 신규 독자들이 대량 유입되기 전부터 현대물 붐이 일어나지 않았나 생각하는 사람은 아래를 읽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소설 읽는 기분으로 읽거나 안 읽으면 되겠고...

2. '익숙함'에서 '다른 익숙함'으로

판타지나 무협을 읽던 기존 독자들이 이런 세계관을 '멀게' 느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독자들이 현대물로 취향을 시프트했다고 한다면, '멈'에서 '익숙함'으로가 아니라 '익숙함'에서 '다른 익숙함'으로의 이동일 것이다. 즉 독자와 배경과의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이런 시프트를 더이상 설명해주지 못한다. 무언가 다른 동인이 있다. 그렇다면, 그 동인은 무엇인가.

내 생각으로는, 전자의 익숙함보다 후자의 익숙함이 보다 '리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 '전쟁' 양상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판타지나 무협의 경우, 가장 흔하게 그려지는 것은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 문파와 문파간의 전쟁 혹은 문파연합과 마교와의 전쟁과 같은, 거대세력간의 알력 다툼이다.

거대세력간의 알력 다툼, 집단적인 대규모 전투, 거대하고 명백한 적의 존재.

즉 '냉전'의 이미지이다. 한국은 지구상 유일하게 냉전을 실시간으로 (아직도) 겪고 있는 나라이다. 위에 북한이 있지 않은가. 또한 집단적이고 상명하복식의 문화라든가, 좌-우의 극단적이고 명백한 이념 대립이라든가, 대규모의 집단 전투라든가 (멀게는 6.25부터 가깝게는 국회의 패싸움이라든지, 전라도-경상도간의 이념 전투라든지.)

한국사회가 어쩌고 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여하간 집단적인 전쟁을 그린다는 것은 한국인의 생활감각에서 '리얼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배경은 굳이 '판타지'나 '무협'이었을까. 이런식의 집단 전투를 그야말로 '연비 좋게' 그릴 수 있어서가 아닐까. 현대를 배경으로 그런 식의 집단 전투를 그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판타지나 무협에 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집단전투의 '해상도'를 낮추지 않는 이상 전투를 그릴 수 없다. 그런데 '해상도'를 낮추는 것은 '리얼'함을 낮추는 결과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집단전투'는 가져오면서도 '해상도'를 낮추지 않아도 되는, 판타지나 무협과 같은 일종의 '모형정원'에서의 전투를 그리는 것은 어떨까?

대충 이런 식의 회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추측이지만.

뭐 이런 식으로, 모형 정원을 빌려 대규모 집단 전투를 그림으로서 독자에게 '리얼'한 감각을 주는 테크닉이 성행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독자에게 있어서 '리얼'함의 기준을 바꿔버리는 사태가, 돌연 현실에서 일어나 버렸다면?

예를 들어 9.11 테러.

'리얼'한 전쟁이 집단과 집단 간의 대규모 전투가 아니라, 산발적인 게릴라에 대해 대해 대항하기 위한 전쟁으로 바뀌게 된다면?

요컨대, '전쟁'에 있어서의 '리얼'함의 기준 변화가, 판타지와 무협에서 현실로의 배경 시프트를 소설 내에서 일으켰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일단, 리얼함의 기준이 더 이상 '대규모 전투'가 아니라 '산발적인 트러블의 대처'라든지, 동등한 경쟁자 사이의 '스펙 경쟁'이라든지, 개념없는 1인을 단체로 사냥하는 '마녀사냥'이라든지 하는 식이 되어버리게 되면, 더 이상 현대에서 이를 그리는 데 있어서의 '해상도 저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식의 작은 이야기들을 그리는 데에서는 충분할 정도의 백그라운드가 그다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려야 하는 것이 달라지면서, QHD 정도가 아니더라도 상관없게 된 것이다. 굳이 '리얼'함을 위해 '판타지'나 '무협'같은 모형정원을 중간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다. 이런 것을 중간에 끼워 넣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리얼'함의 기준이 한국 사회에서 변하고 있다는 기준은, 딱히 여기서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여러 현상들로부터 명확하다. 요 몇년 전부터 범람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사회학 서적들만 보아도, 한국 사회가 더이상 '이전의 기준들'로는 설명되지 않기에 무언가 다른 설명방식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서점가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생각 가능하다. 인터넷에의 극단적인 접근성 향상이라든가, 그로 인한 마녀 사냥이라든가, 현실에서의 대입, 취업을 위한, 갈수록 빡세지는 스펙 경쟁이라든가,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소위 '서바이벌계'의 드라마, 예능을 가리지 않은 대범람이라든가, 한편으로는 과거 회귀 트랜드와 힐링이 강조되는 현상, 등등. 

현대물에서는 뚝 떨어진 특별한 능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스펙 경쟁'에서 끊임없이 승리한다거나,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테러리스트=몬스터와 싸운다거나, 강력한 괴물에게 단체 협공=마녀사냥을 가하는 레이드라든가. 뭐 그런 것을 그림으로서 한국인들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리얼'함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3. 정치적 견해

몇 년 전부터 심심할 때마다 요즘 출판되는 사회학 서적들을 대충 읽고 있는데, 그 중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근대와 탈근대의 중간이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동감하면서 읽었던 적이 있다.

사회적인 트러블들, 사회적인 문제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국가 간의 알력에 있는지 없는지는 소설마다 다르지만, 공통된 점이 있다면 원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어느 쪽이든 '국가'와 같은 거대 집단은 현대 소설 (그 중에서도, 레이드 소설 등)에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에 발생되는 여러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국가'에만 있다는 시각 자체가 낡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국적인 자본의 '제국'(네그리, 하트)이라든가, 종래 근대국가 시스템과 대비되는 환경관리형 권력의 대두라든가(푸코), 그도 아니면 성과사회가 야기한 끊임없는 자기 혹사 루프라든가(한병철).

현대사회의 전쟁, 전투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인의 인식이 그렇냐고 한다면 당연히 아니다. 좌-우냐, 전라도냐 경상도냐에 따라서 극단적인 대립이 이루어진다든가, 국뽕과 일뽕과의 대혈투라든가(웃음). 일본과 극히 대비되는 국제관계에의 전반적인 민감함이라든가(하긴, 이건 일본쪽이 보다 더 이상하다고 보지만.) 여하간 한국인의 인식에서, '거대 서사'는 여러 방면에서 잘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부숴질듯 아슬아슬하지만.

내가 읽은 (레이드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장르소설의 경우 음모론적인 집단이라거나 국가와 같은 거대 단체가 압도적인 영향을 가지고 주인공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탈근대'와 '근대' 사이에 끼인 한국인의 세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태는 탈근대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각은 근대적이다.



4. 3인칭과 에스컬레이트식 성장

사태는 탈근대적이나, 보는 시각은 근대적이라는 것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원 글에서는 소설이 '게임적'으로 변했다고 보고, 독자가 이에 마치 '게임방송을 보듯'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들 소설들이 '가위바위보'가 아닌 일원적인 기준(수치)하에서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둘 다 현상분석으로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좀 붙이고 싶다.

사실 3인칭이라는 것은 근대 이후 발생한 '풍경'과 '내면'과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 (자세한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읽기를) 3인칭이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전지적인 시점'은 근대문학이 필연적으로 함유한 원근법적 도착에서의 '소실점'에 대비된다. 이 '소실점' 하에서 종래 평면적이지 않았던 공간이 등질의 공간으로 화한다든가, 한명 한명이 특질적이었던 인간이 등신대의 인간=배경으로 화한다든가, 있지도 않았던 '내면'이 테크닉에 의해 날조된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 (http://kurame.egloos.com/5139015 요건 예전에 썼던 뻘-글인데 대충 관련되는 내용이라 링크 걸어봄)

에스컬레이트식 성장이 전제하는 능력들의 '수치기술'도 이 3인칭과 마찬가지 특징을 가진다. 3인칭이 비등질적인 것들을 등질화하고 종래 연관되지 않았던 체계들을 통어하는 시점을 부여한다면, 수치기술의 경우 데카르트가 종래의 공간을 좌표계로 등질화했던 것처럼 일원적인 기준=시점 하에서 특이자와 일반인,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통어하는 시점으로서 기능한다.

쉽게 말하자면, 3인칭과 수치기술적인 능력의 기술은 서로 연관되는 것으로서, 둘 다 '하나의 원근법적 소실점'을 유지하는 데에 기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소실점이란, 말할 것도 없이 근대적인 주체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게임방송을 지켜보는 관객=독자'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에서 적절한데, 오직 '관객'으로서의 독자의 포지션 그 자체가 이 주체가 '게임방송을 보기 이전'과 동일할 것임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는 탈근대적이다. (아프리카의 게임 방송) 그러나, 주체는 여전히 근대적이다. (달라진 사태에서도, 오직 '관객'일 뿐이기에)



5. 게임화

위의 의미에서, 원글의 '게임화' 챕터는 좀 적절하지 못하다. 원글에서도 아즈마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부연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게임적인 상황에 대해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것이 게임적 리얼리즘이 아니다. 이 리얼리티에는 참여하는 이의 '해리적'인 정신상태, 앞서 한 말을 빌리자면, 단지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서의 정신상태가, 사태에 걸맞는 탈근대적인 주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바뀐 상황에 맞게 주체 또한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원글에서도 주인공 성향을 분석하고 있는 내용만 보아도, 주인공의 전반적인 특징은 과거 판타지, 무협 시절과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이를테면 변함없이 저열한 남성 판타지라든가.



6. 남성 판타지

남성판타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잡설로, 우노 츠네히로가 말한 '레이프 판타지'론의 맥략을 매우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미소녀 게임 이전의 남성향적 주체 : 여자를 단순 도구화하는 마초적인 시선을 담은 컨텐츠 내용 - 궁극적으로는 여자와 섹스하고 아버지가 됨 - 게임 외적 주체(=독자)의 욕망을 게임 내에서 그대로 충족.

2) 미소녀 게임 이후의 남성향적 주체 : 여자에 대한 순정만화적인 시선(남자=여자를 상처입히는 대상) - 궁극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섹스하고 아버지가 됨 - 게임 외적 주체(=독자)는 자신의 욕망을 1차적으로는 부정하면서도 그것을 은연중 성취.
여기서 주체란, 일종의 클라인 병이 됨. 1과 같이 오브젝트 레벨과 메타 레벨의 층위가 구분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욕망을 포함해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젝트 레벨에서 자신을 부정함으로서 오히려 합법적으로 메타레벨에서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없이 성취.

3) key 등의 작품 : 여자에 대한 순정만화적 시선 -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게임 내용 - 게임 외적 주체의 욕망 성취를 '방해'하는 씬의 삽입(ex. 영원의 세계, 까마귀 시점 등)
여기서 주체는 이중의 레벨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데, 오브젝트 레벨에 있어서 '아버지'가 된다는 스토리 자체가 부정됨과 동시에 메타 레벨에서도 플레이어로서 성립하지 못하도록 '쫒겨나'면서 양 레벨에서 동시 거세됨.

4) 우노의 레이프 판타지론 : 미소녀 게임 이후의 남성향적 주체나 key에서 그런 식의 주체조차 비판하는 자기반성적인 퍼포먼스 그 모두가 '실제로는' 강간 판타지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현실의 지적.

이에 대해 한국의 경우는 1)의 레벨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태는 탈근대적이고, 주체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건축학 개론의 경우만 봐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썅년인 것이고(웃음), 전반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좌-우 가리지 않고 개념없는 '김치녀' 까기에 열을 올리며(웃음), 오브젝트레벨과 메타레벨의 구분 없이, (따라서 주체 또한 아무 위협 없이, 클라인 병과 같이 아크로바틱한 형태일 필요 없이도 얼마든지 유지되는) 일관적인 주체를 유지한다. 위협에서 떨어져 안온한 주체.

뭐, 사태가 탈근대적으로 화한다고 해서 주체가 탈근대적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도 된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글에서 전개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이지만.

아무튼,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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