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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5 20:15

트윈 테일의 천사 – (5)~(8) 번역

5.


  『케이온!!』 은 『만화 타임 키라라』에 연재 중인 모에 네컷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 『케이온!』의 후속작으로 제작되어 전작에 이어 사회현상이라 불릴 만큼 대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이다. 1기에서 물려받은 높은 퀄리티, 모델인 도요사토 초등학교에 대한 「성지 순례」의 과열화, 또 작중에서 사용된 각종 소품들 -예를 들어 「성지」에 빗대어 「성유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할 법한 악기와 문구 같은 물건들- 을 차례로 특정해가는 광적인 팬의 출현은, 무수한 시뮬라크르를 통하여 「끝나지 않는 일상」을 확장하려는, 공기계 애니메이션의 하나의 도달점이라고 부를 만했다.

 캐릭터 모에에 보이는 동물적 욕구와 인간적 욕망의 왕복 운동은 양 작품에서 극한까지 압축, 세련화되어, 「아즈냥 할짝할짝」이라는 점막 접촉의 은유로서의 오타쿠들의 끝나지 않는 연쇄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화한다(40). 2채널이나 트위터에서 「할짝할짝」이 어디까지고 계속되어 가는 (혹은 「비공식 RT」 되어 가는) 모습은, 「모에」에서 보이는 식물적인 생성의 모티브를 뛰어넘어 오타쿠라고 불리우는 「데이터베이스적 동물」들의 순수한 그루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하게끔 만든다(41). 그것은 그야말로 「끝나지 않는 일상」의 상징이라고도 할 법한 광경이다.

 이 희한한 작품을 제작한 것은, 마찬가지로 대히트한 라이트 노벨 원작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공기계의 문법을 확립한 『러키☆스타』, 또한 『AIR』(2005년), 『Kanon』(2006년), 『CLANNAD』(2007-2008년)와 같은 key작품의 애니메이션화로 알려진 교토 애니메이션(이른바 "쿄애니")이다. 이 라인업은 사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서술하기로 하고 우선 제 1기의 『케이온!』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보자.

 딱히 특기도 취미도 없는 주인공 히라사와 유이는 고등 학교 입학 이후 착각 때문에 경음부로 들어가고, 거기서 만난 동료들(같은 학년인 타이나카 리츠, 아키야마 미오, 코토부키 츠무기, 8화에서 등장하는 후배인 나카노 아즈사)와 걸밴드 「방과후 티타임」을 결성한다. 유이들은 악기 연습을 팽개치고 방과 후 음악실로 모여, 차와 과자를 만끽하며 여고생스러운 실없는 대화로 웃음꽃을 피운다. 과거 아즈마는 "『케이온!』의 세계는 무시간적인 느낌이 든다"라고 평한 것이지만(40) 확실히 1기에 그려진 것은 그녀들의 「끝나지 않는 일상」 이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방과후의 빛 속에서 노니는 소녀들의 낙원 - 즉 그것이 공기계의 궁극으로서의 『케이온!』이었다.

  그러나 스기타u가 "『케이온』의 위법僞法 – 역반투명逆半透明적 속임수』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는 제 1기의 『케이온!』의 최종화(12화) 「경음!」를 계기로 유이들의 「일상」이 결코 「무시간적」인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 둔 기타를 메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서둘러 향하는 유이의 모습이, 1화의 등교 장면을 방불케 하는 연출로 그려진다. "1화에서는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사사건건 삽질을 하던 유이가 12화에서는 넘어지지 않고 멈추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전력으로 달리고 있다"(43). 그 동안 천진난만한 자유인으로서 행동한 유이가 폐를 끼친 경음부의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감회가 복받쳐서 울먹일 때, 우리는 그곳에서 희미한 「성장」의 흔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될 것처럼 보였던 「끝나지 않는 일상」은 완만한 나선을 그리며 소녀들을 「끝」으로 이끌어 간다.
 

6.
 

  1기 『케이온!』은 주인공인 유이의 "성장"을 암시하며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2기 『케이온!!』에서는, 이윽고 다가오고야 마는 「끝」의 예감이 소녀들의 「끝나지 않는 일상」에 한층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들은 외톨이인 가련한 소녀의 눈빛을 통해서, 이중화된 「끝나지 않는 일상」의 종언에 입회하고자 한다.

<그림 2>

「방과 후 티타임」의 기타 담당인 나카노 아즈사, "아즈냥"은, 2기 『케이온!!』의 최종화(24화)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피할 수 없는 "끝"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한다(그림 2). 아즈냥 이외의 밴드 멤버들은 모두 졸업하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유이와 3학년들은 모두 같은 대학에 진학하고, 혼자 학년이 다른 그녀만이 아무도 없는 방과 후 음악실에 남아 버린다. 「끝나지 않는 일상」의 분단.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독한 「끝」의 예감에 떨리는 아즈냥의 눈빛이, 『케이온!!』을 보는 우리들 시청자의 시선과 겹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기타 u는 앞의 논고에서, 2기에서는 아즈냥의 주관 시점 -그는 그것을 「아즈냥 카메라」로 명명한다- 이 강조되고 있는 것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그림 3). "원래 아즈사는 정직하게 음악에 임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反·공기계적인 존재로 방과 후 티타임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더욱이 2기에서는[...] 아즈사가 경음부의 3학년 네명과 절단된 상태에서 행동하는 에피소드 몇 개가 삽입되고 있고, 3학년 네명을 계속해서 「배웅하는 시점」, 「뒤쫓는 시점」이 강조되고 있다"(44).

<그림 3>

  즉 『케이온!!』은, 스기타 u가 말하는 「아즈냥 카메라」를 매개로 하여, 아즈냥에게 있어서의 「끝 = 최종화에서의 선배들의 졸업」과 시청자에게 있어서의 「끝 = 『케이온!!』의 방송 종료」가 싱크로되어, 강렬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도록 짜여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끝나지 않는 일상」을 이중화하는 공기계의 전략을 역수逆手로 취해 우리들의 「일상」으로 확장되어버린 「끝」을 들이민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게다가 원작 만화까지 동시에 끝내겠다는 다짐까지 넣으려 한다.) 많은 골수팬들이 "이제 죽겠어"라거나 "살아갈 수 없어"등의 허풍을 떠벌리고 있었던 것은, 캐릭터 모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공기계의 「약속」 -비록 TV방송이 끝나도 그녀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이 배신되어, 사다리를 빼앗겨 버렸다고 느낀 탓일 것이다(45). 이는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결말을 알고 싶다)」라는 일반적인 이야기의 수용 방식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케이온!!』는 끝난다. 아즈냥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이윽고 졸업식 날이 온다. 아즈냥은 시종 넋이 나간 모습으로, 기둥에 이마를 부딪쳐 가벼운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반창고를 붙인다 -마치 속내를 억누르듯이). 선배들의 졸업을 최선을 다해 축복해 주기 위해 아즈냥은 개개인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하고,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그 순간, 그녀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졸업하지 말아 주세요... 이제 부실을 치우지 않아도, 차만 먹고 있더라도 꾸짖지 않을 테니까, 졸업하지 말아 주세요...!" 이마의 반창고가 벗겨지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오열하는 아즈냥. 유이는 그녀의 이마에 새로운 반창고를 붙여주고, 경음부의 다섯 사람을 상징하는 벚꽃과 한 장의 손수 만든 합성 사진을 선물한다(그림 4). 이 사진은 1기 『케이온!』의 첫 화에서, 유이가 입부를 결심했을 때 찍은 것이며, 유이, 미오, 리츠, 츠무기의 집합 사진 위에 동그랗게 오려낸 아즈냥의 얼굴 사진이 붙여져 있다.

<그림 4>

  그리고 졸업생 네명은, 이날을 위해 몰래 연습했던 신곡을 선보인다. 「천사에게 닿았어!」라는 이 곡은 음악실의 부드러운 「공기」를 타고, TV 앞의 먼지가 내려앉은 「공기」를 진동시킨다. 아즈냥의 사랑스러운 눈동자에, 커다란 눈방울이 맺히고 있다.「아즈냥 카메라」는 아니지만, 심하게 뿌옇게 변한 시야 속에서 우리의 이중화된 「일상」이 공진하며, 오후의 온화한 빛으로 가득찬 「영원한 방과후」가 출현한다 -이 때 우리들은 분명히 「천사에 닿은」것이다.
 

7.


 『케이온!!』 최종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스기타 u는 "『케이온!!』은 방과 후 티타임의 해산을 회피하는 것으로서 공기계적인 낙원을 온존하는 것과 동시에, 「현실과 허구의 대립 그 자체를 향한」 수직 방향 시선인 「아즈냥 카메라」를 시청자에게 접속시키는 것으로 공기계적인 상상력을 허공에 매달아버리고 있다"고 말한다(46).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

확실히 스기타 u의 지적처럼, 애니메이션 마지막화에서는 원작 만화의 「졸업식 당일에 아즈사가 경음부의 3학년과 헤어진 후에, '아즈사와 같은 학년 친구'인 우이와 준이 경음부에 가입하는 모습」이 생략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아즈냥은 「구제」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47).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구제」는 경음부의 존속에 의한 「끝나지 않는 일상」의 재연장이라는 정도의 의미이며, 피할 수 없는 「끝」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아니었다. 우리는 오히려 후자의 의미에서 「구제」라는 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끝」에 직면한 아즈냥(과 우리)에게, 과연 그러한 「구제」는 다가왔는가 -『케이온!!』에 걸려진 물음은 매우 심각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천사에게 닿았어!」의 연주가 끝나자, 아즈냥은 천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감회가 복받쳐서 우는 -가 싶다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그다지 잘 하지는 못하네요!". 이 의표를 찌르는 대사는 1기 『케이온!』의 1화 「폐부!」에서, 경음부에 입부를 주저하던 유이가, 미오, 리츠, 츠무기의 연주 -그것이 「날개를 주세요」였던 것도 매우 시사적이다- 를 들었을 때의 솔직한 감상과 똑같은 것이다. 그때 아즈사는 아직 경음부는커녕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에 입학하지조차 않았음에도. 물론 이것은 그냥 우연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그때의 일을 선배로부터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있을 리 없는 우연의 일치를 「구제」의 지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끝나지 않는 일상」의 끝에 다가온, 자그마한 「기적」 이었다고. 


 이 시점을 빌려 분명히 말하고 싶다. 「천사에게 닿았어!」라는 아름다운 곡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아즈냥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천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마, 기억 상실인.


  아즈냥의 얼굴 사진이 붙은 『케이온!』 1화의 집합 사진은, 일견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우리의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48). 이 멀티 레이어 이미지가 표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졸업하더라도 변함 없을 「방과후 티타임」의 정신적인 유대이며, 「떨어지더라도 마음속에선 함께야」라는 흔히 있는 메시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왜 일부러 아즈냥의 얼굴 사진을 동그랗게 도려내어, 그녀가 아직 입부하지도 않았을 때의 기념 사진에 붙였을까. 여기에는 다른 레이어 간의 인지적 차이가 노정되고 있다. 이래서는 「방과후 티타임」의 일체감을 연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즈냥의 소외감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졸업 사진을 촬영하는 날 결석한 학생처럼 말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기묘한 집합 사진이 암시하는 것은 아즈냥이 『케이온!』의 1화부터 이미 유이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니까. 그것은 기억 조작, 과거의 개편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두 종류의 사진이 붙여진 멀티 레이어 이미지는, 『케이온!』의 「끝나지 않는 일상」이 처음부터 화면의 안과 밖에서 이중화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아즈냥이 비치고 있지 않았던 온갖 장면, 씬은 실제로는 모두 「아즈냥 카메라」를 통해 본 광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들과 함께 경음부의 선배들을 계속 지켜보았던 것이다. 아즈냥은 확장된 일상의 곳곳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그녀는, 알지 못했을 터였던 유이의 대사를 『케이온!!』 최종화에서 반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즈 A는 「일상에 있어서의 원경 -『엔들리스 에이트』로 『케이온!』을 읽는다」라는 제목의 논고에서 1기 『케이온!』 의 곳곳에 유이들의 「충실한 시간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이 잠재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49). 그것은 방과 후 부실에 내려앉은 「따스한 오후의 햇살」 그 자체이며, 등장 인물들의 머리 너머에서 「일상 속에서부터 반짝이는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을 먼 곳에서 재발견하는 시선」이다(50). 시즈 A는 이 형체 없는 시선을 「등장인물 개개인의 눈빛」으로 결론내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곳에, 『케이온!』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 그리고 편재하는 천사의 시선을 알아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말하듯, "애니를 보는 그 자체가 현재의 풍경을 복수화하는 것과 연계되어 가는" 것이라면 우리들에게 보이는 『케이온!』의 풍경들 또한, 끊임없이 복수화되어, 겹쳐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니까(51).

  이렇게 생각한다면, 2기 『케이온!!』의 종반에 다용되고 있는 「아즈냥 카메라」 역시 단순한 감정 이입을 위한 장치일 리가 없다. 그것은 멀티 레이어로서의 집합 사진처럼, 아즈냥이 이중화된 레이어 사이를 왕복할 수 있는 유령적인 존재임을 시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화려한 「이야기」를 굳이 배제해 왔던, 캐릭터 모에에 특화하여 우리의 「끝나지 않는 일상」에 기대어 왔던 공기계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던 「기적」이었던 것이다. 「천사에게 닿았어!」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분명 저 하늘은 보고 있었을 거야 / 몇번이나 넘어졌는지를 / 그럼에도 최후까지 걸어왔던 것을". 「하늘」에서 보고 있었던 것은 우리들 자신이며, 「천사」인 아즈냥이었다.

  이윽고 어떻게 해서든 경음부에 들어가고 싶어진 아즈냥은, 아마도 천사였을 때의 기억 대신,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의 신입생으로서 『케이온!』 본편에 등장한다. 빔 벤더스의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을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유이가 그토록 집요하게 아즈냥을 얼싸안고, 볼을 비비며 과도한 스킨십을 꾀했던 것은 그녀가 본래 「닿을」 수 없는 존재 -천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저 그런 방법으로서만, 유이는 아즈냥을 『케이온!』 레이어에 붙잡아두어 화면 밖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혹은 우리가 "아즈냥 할짝할짝"이라고 외칠 때, 그것은 동물적 욕구의 표출도, 혹은 인간적 욕망의 표현도 아닌, 편재하는 「천사에 닿으려」는 하나의 「기도」였던 것은 아닐까(52).

  아즈냥은 『케이온!!』 최종화에서,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즉 「분실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닿은 거야! 멋진 천사를 / 졸업은 끝이 아니야 / 앞으로도 친구니까 /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 정말 정말 좋아한다고 대답할 거야 / 잊은 물건은 이제 없겠지 / 계속 영원히 함께야". 이제 「방과후 티타임」은, 그리고 우리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계속 영원히 함께」이다. 아즈냥은 도처에 존재하는, 그러한 천사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온!!』 20화의 「또 다시 학원제!」에서의 "방과후 티타임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라도 방과후입니다!"라는 유이의 대사는, 「끝나지 않는 일상」를 옹호하고 공기계적 낙원을 온존하려는 (불가능한) 선언으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축제 공연 후 음악실에서 오열하는 유이들 3학년들은 피할 수 없는 「끝」이 임박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가 말하는 「영원한 방과후」가 의미하는 것은, 사전에 「끝」을 내포한 「영원히 끝나가는 일상」에 다름아니다. 시즈 A가 지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곳에는 이미 멀리서 –즉 「끝」의 저편에서부터- 소급적, 회고적으로 바라보는 천사의 눈빛이 짜넣어져 있었다. 「방과 후」는 그러한 특이한 시간의 은유가 된다(53). 그곳에는 아름답게 이상화된 일상 공간과, 비바람을 맞아 무너진 폐허의 풍경이 동시에 비치고 있다.

  이윽고 다가온 「끝」의 예감이 침입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적」의 도래를 소원하는 것이 허락된다. 방과후의 평온한 「공기」 속에서, 끝나가는 「일상」의 구석에, 아스라한 「구제」의 가능성을 품은 -연약한 빛을 반사하여 반짝반짝 빛나는 먼지처럼. 그것은 강한 빛 아래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단지 「끝」을 예감하여 고개를 숙인 시선만이, 간신히 구제의 전조를 들춰낼 수 있다. 방과후의 긴 그림자가 늘어날 때, 「끝」이 「영원」으로 반전된다. 천사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8.


  아즈냥은 정말로 천사였다 -이는 일견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정도의 얼토당토않은 해석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교토 애니메이션이 해 왔던 미소녀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기적의 도래를 예감케 하는 「천사」의 모티브가 여러 차례 등장하여,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anon』의 메인 히로인인 츠키미야 아유는 천사날개가 달린 작은 배낭을 항상 매고 있다. 혹은 『AIR』에서 등장하는 「익인翼人」은 말 그대로 천사의 날개를 가진 종족이다. 게다가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은 아니지만 『Kanon』과 『AIR』, 『CLANNAD』의 시나리오 라이터로 알려진 마에다 준이 각본을 맡은 애니메이션 『Angel Beats!』(2010년)에도 천사의 날개를 가진 여주인공 타치바나 카나데가 등장한다.

 「천사에게 닿았어!」라는 공기계스럽지 않은 곡명은, 이들 「나키게(=울리는 게임)」이라 불리는 key작품의 계보를 암묵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4). 애초 아즈마나 히카와가 했던 말처럼 남성 캐릭터를 철저히 배제하는 공기계 애니메이션의 원류에 「미소녀 게임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면, 교토 애니메이션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노벨 게임의 문맥을 끌어들여, 『케이온!!』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에 개입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즈냥 카메라」의 불능감은 예컨대 『AIR』 제 3부에서의 플레이어=카라스 시점의 그것과 거의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서 플레이어는 무력한 「시선」일 뿐임을 강요당해, 죽어 가는 히로인을 구해낼 수 없다. "선택지를 빼앗기고, 미스즈와 하루코와의 소통도 절단당해, 시스템적으로도 시나리오적으로도 작품 내 세계로의 개입 수단을 일체 박탈당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압도적인 불능감이다"라고 아즈마는 지적하고 있다(55). 「아즈냥 카메라」를 통해서 『케이온!!』의 「끝」에 직면한 우리들 역시 비슷한 불능감에 시달렸던 것이 아닌가.

  또한 다른 한편에서, 제 2기 『케이온!!』의 최종화에서는 『Kanon』에서의 「기적」의 문제계가 은밀히 계승되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여기서는 메인 히로인의 츠키미야 아유의 에피소드에 한정하여 간단히 소개해 보자. 어릴 적 기억를 잃은 주인공 아이자와 유이치의 앞에, 과거 불행한 사고로 죽었을 터였던 아유가 나타난다. 유이치는 그녀와 친분을 쌓으면서 함께 보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고, 마침내 그의 품 안에서 소녀는 소멸한다. 그러더니 혼수 상태에 있던 아유의 본체가 눈을 뜨고, 봄의 도래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비평가 무라카미 유이치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종류의 「기적」이 존재한다. 즉 "유령 상태의 아유와 재회한 것" 및 "혼수 상태의 아유가 눈을 뜬 것"이다. 전자는 애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해 후자는 일어날 가능성이 한없이 낮은 일이다. 무라카미는 이 두 가지 사건을 각각 「신학적 기적」 / 「확률적 기적」으로 부르며 구별하고 있다(56).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두 기적을 교환한다는 치트 행위"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는 「천사 인형」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유가 마치 천사 같은 모습으로 유이치의 앞에 나타난 것은,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천사 인형」이 혼수상태인 소녀의 소원의 매개체(よりしろ)가 되었기 때문이다.

  『케이온!!』 마지막 화에 삽입된 「천사에게 닿았어!」는 『Kanon』의 「천사 인형」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곡은 "그다지 잘 하지는 못하네요!"라는 아즈냥의 놀라운 대사 –있을 수 없는 우연의 일치라는 「확률적 기적」- 을 일으키고, 이에 더해 "아즈냥은 정말 천사였다"는 「신학적 기적」으로 변환하는 것을 가능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순간이었다. 아즈냥이 굵은 눈물을 머금으면서 「천사에게 닿았어!」를 듣고 있을 때, 텔레비전의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들 또한,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을 금치 못했음이 틀림없다(그림 5). 이제 「아즈냥 카메라」적인 구도가 아닌데도, 시청자들은 아즈냥이 보고 있을 광경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니코니코동화의 속어로 「셀프 이코노미」라 불리는 눈물로 희미해져버린 해상도가 낮은 세계이다(57). 이 곳에서 아즈냥은 화면의 안과 밖, 겹쳐진 두개의 레이어의 도처에 존재하는 그러한 「천사」로 현현한다.

<그림 5>

아즈냥은 화면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들과 함께 있다. 이중화된 「일상」의 구석구석에 울리는, 확장된 「공기」를 공진케 하는 음악의 힘으로, 「천사에게 닿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경험이 일어난다(58). 불가피한 「끝」이 「영원한 방과후」로 반전되고, 편재하는 아즈냥의 눈빛이 우리를 에워싼다. 「끝나지 않는 일상」이 끝을 맞이할 때,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우리들은 천사의 트윈 테일이 살랑이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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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로서의 teramat씨의 매력은, 예전 투러브 트러블 비평을 보았을 때에도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대상에서부터 완전히 그럴듯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게다가 키모오타(...)스러우면서도 진지하고 그걸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면은 이 글에서는 특히 후반부의 루이즈 카피페 분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네요 (...)

よりしろ는 통상 신령스러운 나무, 암석 같은 신의 빙의물이라는 뜻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의역해서, 인터페이스라고 번역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무난하게 매개체라고 번역한 것이지만.

이 다음 파트에서는, 케이온 비평의 맥락에 이어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카오스*라운지에 대한 비평으로 이어집니다.


덧글

  • Barde 2016/05/21 21:00 # 답글

    글을 쓴 사람에게는 죄송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는 논의 같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오히려 현재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인 '비평의 불능'이 엿보인 느낌입니다. (큰 주제를 다루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다뤘다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라는 점을 덧붙이겠습니다) 반면에 번역은 쉽게 잘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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