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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00:00

<genron 3>의 아즈마씨의 서문 마지막 부분: 한국의 '나쁜 장소'론 번역


최후에, 또 한가지의 논점을 부가하고 싶다.

가토는 '패전후론'에서, "전후라는 이 시대의 본질은, 그곳에 일본이라는 사회가 이를테면 인격적으로 두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고 쓰고 있다. 패전의 상처는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분할시켰고, 그것에 응하는 형태로 언설또한 분할되어 버렸다. 그 분할은 일반적으로, 보수와 혁신, 우익과 좌익, 개헌과 호헌이라는 정책이나 세계관의 대립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가토는, 그것은 오히려 인격적 분열이며, 일본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무엇인가라는 감각의 차이야말로 대립을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가토의 이 지적은 예리하다. 그것은, '패전후론'의 출판으로부터 약 20년, 넷 상에서 '넷수꼴'과 '넷좌빨'의 논쟁이 매일 반복 확대되고 있는 2016년 지금 이 시점에 더욱 유효하다. 넷수꼴과 좌빨은, 정책 등에 대해 의론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충돌하고 있는 이유는, 헌법을 바꾸는 것과 지키는 것, 중국, 한국을 비난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둘 중 어느 쪽이 제대로된 일본인인지 그 감각이 애초 어긋나 있기 때문임에 다름아니다. 단지 가토는 그 분열에 대해 '내향적 자기'와 '외향적 자기'라는 공간의 비유로 말하고 있다. 우익이 내향, 좌익이 외향이라는 정리이지만, 패전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한편으로는 넷수꼴적인 언설이 평범하게 국외로 흘러가는 것이 되고, 다른 한편 전후민주주의적인 감성을 타테마에建前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내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역사적 기원으로 돌아가 정리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인은 지금, 두 가지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두 가지 '우리들'을 가지고 있다. 한 편으로, 1868년의 메이지유신에 기원을 가지고, 제 2차대전의 전사자를 동포라고 감각하는 국가주의자인 '우리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1945년의 '종전'에 기원을 가지고, 제2차대전의 아픔을 마치 외국에서 있었던 일처럼 감각하는 전후민주주의자인 '우리들'이 있다. 전자로부터 한다면 일본국 헌법이 점령군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후자로부터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우리들'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된다. 후자에 있어서 전전(戰前)의 모든 우행들은 '우리들' 이전의 군국주의자들이 범한 범죄에 지나지 않지만, 전자에 있어서는 그러한 절단이야말로 경악할만한 건망증이며, 선조들에 대한 외경의 결여라는 것이 된다. 일본인은, 한편으로는 과거를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통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양자를 모순없이 공존시키고 있다. 즉 전후의 일본인은 이중인격자인 것이다.

전후 일본이라는 '나쁜 장소'는, 우리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역사인식을 멤도는 국외의 의론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성가신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일본인은, 여러 외국, 중국이나 한국에서 보자면, 지금(리베럴이) 부정한 것을 바로 (보수가) 긍정하고, 역으로 지금 (보수가) 긍정한 것을 바로 (리베럴이) 부정한다는 일종의 인격파탄자로 보일 것이다. '나쁜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토는 "하나의 인격으로의 회복을 위해서, 어떠한 방법이 우리들에게 있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쁜 장소'는 반드시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번 취재에서, 서울에 있는 3개의 역사 박물관을 돌았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쟁기념관, 그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본통치기 형무소가 있던 곳에 지어진 박물관으로, 당시의 옥사가 전시실이 되어 있다. 일본인통치자(일제)에 의한 고문을 재현한 인형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일본의 우익들 사이에서는 반일 프로파간다의 거점으로서 악명 높다. 전쟁기념관은, 그 이름대로 전쟁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지만, 전시들의 대부분은 조선전쟁(6.25)의 기록에 할애되고 있고, 실질적으로는 조선전쟁기념관이라고 불러도 지장이 없다. 기념관 앞에는 조선전쟁에서 한국을 지원한 국가들의 깃발이 나열되어 있고,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가 서 있다. 정치색이 매우 강한 시설이지만, 광대한 부지에 전차나 전투기가 나열되어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있다. 최후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광화문 가까이에 2012년 개관한 새로운 박물관으로,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식민지시대나 조선전쟁을 다루고는 있지만, 역점은 지금의 한국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는지에 맞춰져 있고, 정치색은 의외로 엷다.

3개의 박물관은 어느 것도 한국의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기 위해 불가결한 시설이고, DMZ 투어의 수용을 기사로 하기 위해서도 참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방문지로 고른 것이지만, 관람을 끝내고 나는 역으로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이들 3가지 박물관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즉 '우리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있어서, 각기 다른 연대에 기원을 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반일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우리들'의 역사는 1919년의 대한민국임시정부(망명정부) 수립까지 확장된다. 그 전제 위에서 처음으로, '일제'가 독립운동의 투사들에게 가한 폭력을 지금도 이어지는 비극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전쟁기념관의 역점은, 전술한 것처럼 조선전쟁에 두어져 있다. 그런고로 이번에는 1948년의 대한민국 수립선언이야말로 결정적인 날이 되고, 동포와의 전쟁이 마치 침략자로부터의 조국해방전쟁인 것처럼 그려지는 것이 된다. (실제로 조선전쟁은 북조선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불리고 있다.) 기념관의 기나긴 전쟁전시를 벗어나면, 관객은 원형의 공간으로 인도된다. 벽면에는 '자유'와 '평화'의 문자가 각국어로 쓰여져 있고, 중심의 백남준을 연상시키는 멀티 채널 인스터레이션은 환성을 내는 민중이나 포를 쏘는 전함의 영상이 계속 재생된다.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우리들이 진짜 '우리들'이 된 것은 북조선이란느 나쁜 분신을 때려눕혀 배제한 후부터라는, 일제 타도와는 이질적인 또 하나의 건국이야기이다.

그리고 최후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3번째의 분할선이 나타난다. 그것은 1987년의 제6공화국의 탄생, 즉 '민주화'라는 분할선이다. 동 박물관의 1980년대를 다루는 전시실의 판넬(일본어 번역이 있다)에는 "야당 정치가, 학생, 지식인, 노동자의 피가 스민 민주화 투쟁이 확대되어" "민주주의는 드디어 1980년대 후반에 승리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현대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기서 제 5공화국 이전의 군사정권에게 '승리'하여, 그것을 때려눕힌 새로운 우리들로서 재정의되는 것이 된다. 이 최후의 분할선의 존재를 눈치채었을 때, 나는 어째서 한국인의 일부가 1965년에 맺어진 일한기본조약을 존중하려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독재정권하에서의 한국정부의 결정은 '우리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압재자에 의한 강압이고, 현재의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감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아이덴티티는 적어도 3개의 '우리들'이 겹쳐지며 작성되어져 있다.(강조 번역자) 한국은 어떤 때에는 일제의 지배에서 1945년에 해방된 국가이며, 어떤 때에는 북조선의 침략에서 1953년에 해방된 국가이며, 어떤 때에는 군인들의 압정으로부터 1987년에 해방된 국가이다. 그 각자의 '우리들'이 다른 자화상을 가지며, 다른 적의 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쁜 장소'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격의 분열도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이중인격자라고 한다면, 한국은 3중인격자이다. (강조 번역자) 그것은 아마도, 근대 일본에 있어서는 커다란 외상이 하나(패전)인 것에 대해, 근대 한국에 있어서는 두 개 있었다(식민지화와 조선전쟁)는 것에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분열은 혹시 다른 나라에서도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칸트는 국제관계론을 구상할 당시, 국가를 가진 민족은 하나의 인격이라 보아도 된다고 썼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제는 유럽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세계는 외상을 입은 국가가 많으며, 실제로 우리들의 나라 주변에는 다중인격 국가(이것은 다민족 국가와는 다르다) 뿐이며, 그러므로 외교든 뭐든 잘 될 리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시아 전체가 '나쁜 장소'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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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ron 3>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덧글

  • 그냥 2016/08/17 11:32 # 삭제 답글

    일본인이라기 보다는 왜놈의 말잔치이군요.

    '온갖 말의 성찬 속에 결국 '지금까지 아시아(특히 한국)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일본이 이중인격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인(특히 한국인)들의 다중인격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인)의 책임은 아니다.'

    그냥 '더러운 놈'이라고 한마디 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 ㅇㅇ 2016/08/20 14:29 # 삭제

    사스가 홧병발작의 민족... 조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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